노벨상과 대한민국 (그리고 일본)


포항공대 물리학과의 정윤희 교수님이 연구재단 전문위원 임기를 마치면서 기고한 글에서 발췌했다.


기초연구 선진화: 꽃보다 뿌리


<전략>
 
2000년대 들어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13명이나 배출한 일본을 살펴보자. 일본은 1867년 막부에서 일본국왕으로 정권이 이양되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시작으로, 봉건국가에서 근대국가로의 변혁이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한 세대만인 30년 후 청일전쟁, 40년 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국력이 열강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세계에 알렸다. 이는 산업적 측면에서 한 세대에 국가 변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최초의 노벨상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받았다. 산업화의 성공과 최초의 노벨상 사이에는 50여년의 간극이 있다. 이 50년은 어떠한 시절이었는가? 이 시절의 일본은 세계의 흐름에 뒤처진 국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세계열강 중의 하나였고, 미국과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국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카와의 수상에서 또 다시 50여년이 흐른 후인 200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물리, 화학에서 다수의 수상자를 배출하였는데, 이들은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들이다. 아마도 유카와의 경우는 개인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경우이고, 지금의 다수 수상은 일본의 기초과학이 최고수준에 도달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경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산업화는 한 세대에 이룰 수 있지만, 기초과학의 최고 수준 도달은 한 세기 또는 그 이상이 걸린다는 점이다. 한 국가의 학문수준은 세월을 딛고 자라는 그 무엇이 채워져야 한다. 산업화는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위로부터의 견인으로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지만, 학문의 최고 수준 도달은 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뿌리가 충분히 다져진 이후에야 비로소 꽃이 핀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초과학의 뿌리가 자라는 토양은 그 사회의 문화이고, 이는 기초과학의 수준이 우리의 의식 수준, 가치관, 생활양식 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세월이 필요한 이유요, 눈에 보이는 그래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제도 개선만으로는, 또 소수 몇 명의 엘리트만 키워서는 이룰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의 경우로 돌아가 보자. 산업화는 우리도 한 세대에 해냈다. 군사정부에 의해 60년대에 시작된 산업화는 88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한 세대 만에 성공적으로 성취되었다. 이후 20년, 우리는 선진국의 문턱까지 도달했으며, 다수의 기업은 세계에서 선두를 다투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일본의 경우가 보편적인 원리라면, 우리는 지금 산업화 이후 50년의 간극에 속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최초의 노벨상은 아마도 2040년 이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시대도 바뀌고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도 달라졌으며, 정보도 풍부하고 정부의 투자 의지도 확고하니, 시간을 조금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희망이지만, 만일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후략> 


원본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http://webzine.nrf.go.kr/epage_0912_1/html/epage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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